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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저널-5호] (2002년 5호 일반기사) [취재기]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하루
 글쓴이 : 기자협회
작성일 : 2008-03-21 23:49   조회 : 838  
HTML Document 기억에 남는 취재현장

mbc 조인호

"백두산에 오르면, 이 한라산을 향해서 남쪽에 있는 친구들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소리치고 외치겠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뒤이은 이산가족 상봉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2000년 8월 22일.
한라산 백록담에도 이러한 화해 분위기를 타고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었다.
함세환(69),김명수(79),한장호(78),최선묵(73),이세균(79),최수일(62)
한달 뒤면 북한으로 송환될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이었다..

그날 저녁 9시에 방송될 뉴스를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 한라산 성판악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는 그들을 처음 보면서 문득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과연 이 노인들이 백록담 근처까지 갈 수나 있을런지.
한 눈에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백발이 성성한 쇠약한 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장기수 노인들에게 한라산은 남쪽 땅에서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공작선을 타고 `남파 공작원`으로 남쪽땅을 밟은 뒤
`비전향 장기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수십년동안 옥살이를 한 그들은
백록담을 오른뒤 `공화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산을 오르는 노인들의 다리는 무겁고, 숨은 가빴지만
쉴새없이 토해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젊은 시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주도는 50년전 제국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선봉에 섰던
혁명의 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북으로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온것이지요."
"전향을 거부하는 바람에 감옥에서 수십년을 보냈지만,
감옥에 가기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국주의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분단은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다른 것은 포기해도 정신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통일운동을 하기 위해 남한에 왔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
단 한 순간도 그 생각을 잊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남쪽땅에서 살았지만 한 순간도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던 적이 없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평생을 대한민국의 감옥안에서 `공화국의 인민`으로 살아온 노인들이었다.


백록담에 오른 노인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카메라기자의 주문에 따라 포즈도 취한 뒤
환한 웃음을 지은채 손을 흔들며 산을 내려갔다.
북으로 가면 백두산에도 꼭 오르겠다면서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그들은 행복이 눈앞에 보이는 듯, 들뜬 표정들이었다.
차가운 감방안에서 수백번, 수천번도 더 꾸었을
공화국 영웅의 꿈을 떠올리면서.

노인들은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북쪽에도 가족이 없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거나, 결혼도 하지 않아 가족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노인은 남쪽에 딸이 있다고 했지만,
딸을 만나기를 이미 포기한 듯 했다.
그들은 남쪽에서의 행복은 오래전에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요즘도 가끔 북한과 관련된 뉴스를 보다 보면
그 노인들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들이 공화국으로 간 뒤
공화국 영웅으로 대접받았었는지
백두산에도 올라 남쪽을 향해 통일 노래를 불렀는지.

그들이 왜 평생을 감옥에서 보냈는지.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었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평생 불행과 한만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노인들이
백록담을 내려가면서 품었던 행복의 희망을 잃지 않았기를 바랄뿐이다.